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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가 있으면 의무도 있다

인권에서 “권리가 있으면 의무가 있다”는 명제만큼 오해되는 말도 없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인권을 주장하기 이전에 의무부터 다하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용한다.

그러나 이는 이 명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에서 나오는 것이다. “권리가 있으면 의무도 있다”는 말은 간단히 해석하면 “권리를 가진 주체가 있으면 그 권리를 보장해줘야 할 의무를 가진 주체도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권리의 주체와 의무의 주체는 서로 다른 것이다.

‘두발자유 문제’에서 예를 들어보자. 많은 교사와 학교관리자들이 “학생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으니 두발자유를 요구할 권리도 없다”고 주장하곤 하는데, ‘학생으로서의 의무’라는 게 그 실체가 모호한데다 그 양이 무한정 늘어난다는 특성이 있다는 건 차치하더라도(웃음), 여기서 ‘의무를 다해야’ 할 사람은 학생이 아니라 교사와 학교관리자이다.

학생이 ‘자신의 두발형태를 자유롭게 결정할 권리’를 갖게 된다면, 교사와 학교관리자에게는 그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해 ‘두발규제를 하지 않는’ (소극적) 의무가 발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학생이 ‘두발자유할 권리’를 갖고 있다면 교사와 학교관리자는 ‘두발규제하지 않을 의무’를 갖게 된다. 여기서 그 학생이 ‘학생으로서의 의무’를 다했든 다하지 않았든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별개의 문제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 세금 내는 것을 거부한다고 해서, 혹은 군 복무를 거부한다고 해서, 적절한 사회복지 서비스 등의 ‘권리’를 누릴 자격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고 해서, 국가가 그 사람에게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적극적) ‘의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정도면 간단히 정리가 된 것 같다. 그런데 왜 이런 오해가 생겨난 것일까? 아마 헌법에 ‘국민의 권리와 의무’가 같은 장에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알권리

‘알권리’(right to know)란 ‘일반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정보원으로부터 정보를 자유롭게 취득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데, ‘표현의 자유권’에서 파생되어 나온 권리이다. 알권리는 ‘국민주권의 원리’에 기초하여 그 정당성을 가지는데, 국민은 ‘국가의 정치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므로 그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려면 그 전제로 ‘판단을 내리는 데 필요한 정보’가 적절히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알권리의 대상이 되는 정보에는 ‘국정을 판단하는 데 필요한 정보’, ‘안전하고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정보’ 등이 있다.

알권리는 여러모로 많이 왜곡되는 권리인 것 같다. 나훈아 씨의 염문에 관해 보도하던 언론들이 둘러대던 핑계라던가, 신정아 씨의 알몸 사진을 게재한 <문화일보>가 늘어놨던 변명이라던가, 이번 군포 연쇄살인사건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하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그 주장을 정당화시키겠답시고 내놓는 이유 같은 것들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나훈아 씨의 염문이라던가, 신정아 씨의 알몸 사진이 알권리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굳이 논증할 필요는 없을 듯하고. 과연 군포 연쇄살인사건 피의자의 얼굴 공개는 알권리를 위한 것일까? 혹자는 ‘안전하고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정보라고 주장할지는 모르겠지만, 글쎄. 아마 강씨가 출옥하게 되는 일은 없을 테니 ‘출옥 후 저지를지도 모를 범죄를 피하려고’라는 이유는 맞지 않을 것이고, 설사 출옥한다고 해도 최소한 15년 이상 징역을 살 텐데, 그동안 사진 보관하고 계실 것인지. 아니면, 이런 얼굴이 ‘범죄형 얼굴’이라는 것을 알려줌으로써 그와 비슷한 얼굴을 피할 수 있게 하려고? 19세기에서 오신 분인가. ‘범죄형 얼굴’ 같은 건 없다. 그냥 솔직히 말하시길. ‘앙상한 호기심과 복수심’을 채우고 싶은 것뿐이잖은가.

저열한 사익이 ‘권리’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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