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noveno

국기에 대한 맹세, 여러가지 생각들

2006년 7월 21일, 국기에 대한 맹세에 관한 내 생각을 적은 글을 쓴 이후, 몇 주가 지나지 않아 나는 앞으로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지 않은지도 2년이 다 되어간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하기 싫어서’ 하지 않는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흥분하며 덤벼드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몇 마디 덧붙인다면.

국민이 곧 국가의 주인인데, 왜 국민이 국가에 ‘충성’해야 하는가. 아니, ‘사랑’하고 싶지도 않다. 국가권력은 오랫동안 사람들을 억압해왔다. 수많은 폭력과 전쟁들. 흔히 사람들은 국가가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고 믿지만, 그렇지 않다.

국가가 국민들을 ‘지켜주는’ 일은 없었으며, 오히려 국가에 의해 살해당한 사람이 그 국가의 국민인 경우가, 즉 국가가 자국민을 살해한 경우가 훨씬 더 많다. 20세기에 국가가 살해한 사람의 수는 약 2억명 정도인데, 그 중 1억 3천만명이 자국민이다. (R.J. Rummel – Death by Government) 저 1억 3천만명 중, 나치 독일에 의해 살해된 유태인 등을 들며 항변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렇기에 더욱 국가는 문제다. 국가는 언제든지 그 내부 구성원 중에서 타자를 만들어 억압할 준비가 되어 있다. 아니, 늘 억압하고 있다.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얼마나 많은 억압이 국가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자신을 언제든 죽일 준비가 되어 있는 존재를 ‘사랑’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끔찍한 짝사랑이다. ‘충성’은 말할 것도 없다.

잡소리는 그만하고, 어쨌든 2년이 되어간다. ‘남들은 다 하고 있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지 않고 있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우습다’는 것이다. 그까짓 국기가 뭐라고 나는 맹세를 하지 않는, 별 것도 아니는 행위를 하며 뭔가 대단한 일이나 하는 착각을 하고 있는가. 우습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면, 더욱 우습다. 이 ‘별 것도 아닌 행위’에 다들 뭔가 엄청나게 심각한 눈빛을 하며 가슴에 손을 올리고 있다. 게다가, 이 ‘별 것도 아니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교사에게 3개월 정직 징계를 내리기도 한 ‘국가’는 더욱 우습다.

국기에 대한 맹세의 문구가 변했지만, 그 덕에 더욱 우습게 되어버렸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니. 네가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면 나는 ‘완소 훈남 김동욱’이다. (웃음) 자기 입으로 ‘자유롭고 정의’롭다고 말하는 국가는, 국가가 얼마나 ‘자유롭고 정의’롭지 못한 존재인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나도 ‘완소 훈남’이 아니다. (웃음)

뭐, 그냥 그렇다. 이 우스운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3개월 정직을 내리긴 하지만) 감옥에 쳐넣거나 하지는 않을 정도는 되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과, 이 따위 우스운 행위가 강요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하며, 아니, 국가라는 거대한 억압이 사라진 세상을 상상하며, 나는 남들이 가슴에 손을 얹을 때 그냥 서 있는다. 우습다.

덧쓰기.
이 블로그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로 검색을 해보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급진적(?)으로 되어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웃음)

하지 않는 이유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왜 하지 않느냐고? 음…. 질문에 답하기 전에 너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 넌 국가가 뭐라고 생각하니?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면서 무엇을 떠올리니? 국가를 생각할 때 뭘 떠올리니?

네가 뭘 떠올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이웃집 아저씨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떠올리는 일은 잘 없을 거야. 그치? 그런데 우리가 충성을 맹세하는 그 국가가 대체 누구일까? 무엇이 아니라 누구냐고 묻는다는 것에 집중해줘. 음…. 난 말이지, 국가는 곧 국민 그 자체가 아닐까 싶어. 옛날에야 왕이 모든 권력을 다 갖고 있었으니 ‘짐이 곧 국가’였겠지만, 지금은 주권재민이니 국민주권이니 국가의 권력을 국민이 모두 갖고 있다고 하니까 말이야. 국가는 곧 국민 그 자체라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 국민 대다수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니? 생각해봐. 그러면 국가는 곧 국민이고, 국민 대다수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니, 넌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며 그런 평범한 사람들을 떠올리는 게 맞지 않을까?

맞지 않아? 맞지? 그런데 말이야, 넌 이웃집 아저씨에게 충성할 거니? 그것도 ‘몸과 마음을 바치며’ 말이야. 혹시 네가 이웃집 아저씨라는 표현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아주머니로 할까? 아니면 네 친구? 아저씨든 아주머니든 네 친구든, 네가 그 사람들에게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할 이유가 없는 건 분명해. 물론 넌 그 사람들이 위험한 상황에 부닥쳐 있거나, 어려운 사정에 부닥쳐 있을 때 그들을 도와줄 필요는 있겠지. 하지만, 네가 그들을 도와준다고 해서 그들에게 충성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 그래, 내가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지 않는 이유도 그것일 뿐이야.

어쩌면 네가 나에게 ‘국가는 너를 전쟁과 같은 생명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주지 않니?’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국가와 국민은 서로 다른 게 아니라고 나는 생각해. 네가 네 친구를 지켜주고, 네 친구가 너를 지켜주는 것일 뿐이야.

그리고 노파심에 조금만 더 말할게. 어쩌면 네가 국가를 생각하며 대통령과 같은 국가원수, 혹은 그 외에 정치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를 지켜주는 건 아니잖아. 단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좀 더 잘 지킬 수 있게 그들에게 몇몇 권력을 넘겨준 것일 뿐이지. 말하자면 스포츠 경기의 감독과 같은 존재라 할까? 감독이 없으면 경기에서 이길 확률이 줄어들겠지만, 그렇다고 감독이 경기를 하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경기에서 이겼다고 선수들이 감독에게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때까지의 역사를 보면,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예를 들어 전쟁과 같은 일들은, 우리, 그러니까 평범한 사람들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일어난 경우가 많잖아. 그런데 전쟁에 나가 싸운 건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도 평범한 사람들뿐이었지.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그러한 전쟁을 일으킨다든지 해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위협했던 사람들은 대개, 네가 국가를 생각하면서 떠올렸을지도 모를, 정치권력을 비롯한 권력을 쥔 사람들이었고.

이런데도 국가에 충성해야 하니? 난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해.


예전에 국기에 대한 맹세에 관한 글을 쓴 이후로,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지 않고 있다. 내가 맹세를 하든 말든 신경 쓰는 사람도 거의 없지만. 어쨌든, 난 거창한 이유로 맹세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냥 국민이 곧 국가라는 말, 몇백 년 동안 말해져 왔지만 제대로 지켜진 적은 거의 없는, 그 말대로 세상이 돌아가길 바라는 작은 소망 때문일 뿐이다. 그 소망을 다른 사람도 알아줬으면, 특히 내 친구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입말(口語)로 ‘국기에 대한 맹세’에 관한 두 번째 글을 쓴다.

국가라는 말만 나오면 흥분하는 모습들, 이젠 없었으면 좋겠다. 나와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좋지만, 그게 지나쳐 뭘 하든 충성이면 곤란하다. (웃음)

국기에 대한 맹세

올해 초에 한겨레21에서 다룬 이후, ‘국기에 대한 맹세’에 관한 기사를 자주 보게 된다. 이전에도 이에 관한 글을 써보려다 말았는데, 개인적으로는 문구를 수정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한다. 원래 원안대로 ‘정의와 진실’ 등의 단어를 넣은 모습으로 말이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와 진실로써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국기에 대한 맹세의 원 저자의 말대로, 정의와 진실이라는 문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올바른 길로 갈 때만 충성을 할 것이냐, 국가가 어떤 짓을 하더라도 무조건 충성할 것이냐의 차이는 크다고 본다.
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충성 대신 사랑이라는 말이 어떨까싶다. 두 단어의 어감 차이는 분명 크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유지하느냐 폐지하느냐 수정하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강제하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라고 다른 사람들이 강제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특히나 무조건적으로 따를 것을 강요한다면 말이다.
게다가, 국가를 사랑하는 방법이 ‘국기에 대한 맹세’만 있는 건 아니지 않는가. 세상에는 이런 식으로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저런 식으로 사랑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개인의 양심에 맡겨두는게 어떨까.

덧쓰기.
국기에 대한 맹세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말을 보면, ‘순국 선열을 생각해 부끄럽지도 않냐’는 말을 자주 하던데, 순국 선열들이 자신의 몸을 바쳐 지키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던가를 고민해보게 된다.
순국 선열들이 지키려 했던 것은 핍박받았던 우리나라의 사람들 개개인이었던가, 아니면 충성을 바쳐야 할 국가 그 자체였던가. 나는 전자라고 생각하는데, 만약 그 분들이 살아 계시다면 한 번 여쭤보고 싶은 문제다.

덧쓰기2.
국기에 대한 맹세, ‘폐지’ VS ‘유지’ 논란 휩싸여…
어제 나온 동아일보 기사인데, 중간에 이런 내용이 있다.

행자위의 국기법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미국·일본·중국 등 상당수의 나라들은 ‘국기’에 대하서 헌법 또는 법률로 정하고 있다. 또 미국은 1892년 국기에 대한 맹세를 법률로 재정했고, 많은 주가 낭송을 의무화하고 있다.

위 기사에도 나와 있듯이 ‘국기’를 헌법에 명문화하고 있는 나라는 약 90개국이고, 그 외의 나라들 상당수가 일반 법률로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국기에 대한 맹세’를 법률로 규정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과 우리나라 둘 밖에 없다고 알고 있다.

‘국기’를 법률로 정한 것과 ‘국기에 대한 맹세’를 법률로 정한 것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나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국기에 대한 맹세’ 유지 쪽 네티즌 의견만 싣는 등 ‘유지’쪽 방향으로 기사를 쓰면서, ‘국기’와 ‘국기에 대한 맹세’를 연결시키며까지 ‘다른 나라도 다 하고 있는데 우리는 왜 안 하려 하느냐’의 뉘앙스를 주는 이유가 궁금하다.

다른 나라는 다 법으로 정해놓지 않았는데 우리나라와 미국만 정해놓지 않았는가. 물론 ‘국기’말고 ‘국기에 대한 맹세’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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