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noveno

나는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어찌저찌해서 교육대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주변 사람 중 내가 이 대학에서 졸업하는 것만으로 공부를 끝마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물론 공부는 평생 하는 것이고 그런 식의 ‘사람은 평생 배우며 산다’는 식의 말이 아니더라도 ‘교사연수’라던가 ‘평생교육’이라던가 하는 것 때문에라도 공부를 평생 하겠지만 말이다. 그런 이야기 말고, 주변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건 정확히 말해 ‘대학원 진학’인듯하다.

교수가 된다는 건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지만 “그래도 우리 아들은 남들과 다르니까 가뿐히 해낼 거야”라는, 한국에서 대학입시 공부 좀 한다는 자식을 둔 평균적 부모의 마음을 지닌 나의 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고, “요즘 교사라면 석사는 필수이고 박사는 선택”이라고 하시는 석사 학위 소지자인 초등교사 고모에, 그 외의 여러 친척에…. 심지어 놀랍게도 중·고등학교 친구 중 몇몇은 내가 당연히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더 할”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도대체 내가 평소 처신을 어떻게 했기에 지난 1학기 성적이 엉망으로 나온 꼬꼬마 1학년생이 이런 기대를 받고 있는지 모르겠다.

뭣 모르는 스무 살이지만 하여튼 나도 주변의 기대대로 “공부를 더 하”고 싶긴 한데, 어째 나는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주변에서는 내게 구체적인 분과학문을 딱 집어서 이야기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다 보니 안 그래도 변덕이 심한 성격의 나는 공부에서마저 변덕이 심하다고 핀잔을 듣고 있다. 고모는 내게 “언제는 경제학이라더니 이제는 사회학이냐”며 “사회학이면 교육사회학 쪽으로 해서 교육대학원 진학하면 되니 여러모로 좋긴 하다”고 덧붙이고, 어머니는 교육대학교 1학년 2학기 교양 사회과학 수업을 신청하는 것뿐인데 “왜 사회학을 안 고르고 정치학을 골랐는지” 궁금해하시며 둘 다 관심 있다는 나의 대답에 어떻게 나의 관심사를 충족시키며 될 수 있는 대로 편한 방법으로 대학원에 다닐지를 궁리하다 고모와 똑같이 ‘교육사회학’으로 일단 결정(?)지어 놓는다. 내 책장에 철학책이 많이 꽂혀 있다는 이유로 지레 철학 쪽으로 대학원 진학을 할 것으로 판단한, 아버지의 뒤를 따라 윤리학 교수가 되겠다며 철학/윤리학 책 외에는 읽는 것을 본 적이 없는 학교 선배는 어느 날 내 책장에 <근대적 주거공간의 탄생>(이진경)이 꽂혀 있는 걸 보며 건축학에도 관심 있느냐며 왜 이리 관심사가 다양하냐고 묻는다. 황당하다.

나는 아직 내 공부의 문제의식조차 전혀 잡혀 있지 않은데 주변 사람들은 ‘대학원 진학’이라는 틀에 나를 잡아넣고 그 안의 또 다른 틀, 명확하게 세분된 분과학문의 이름을 대주기를 기대한다. 꼭 그렇게 공부를 해야 하는 걸까? 공부라는 게 분과학문으로 그렇게 명확하게 나누어질 수 있는 걸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통섭’이니 뭐니를 들먹이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참 짜증 나는 반응이다.) “공부를 더 하”려면 꼭 대학원에 진학해야 하는 건지도 의문이다. 하여튼 나는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에 대해 좀 더 오래 생각해봐야 할 것 같은데, 사람들은 내가 지금 당장 그 답을 갖고 있을 거라고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듯하다. 그런데 나 계속 공부할 돈은 좀 주시려나? -_-;;

체계적인 공부

유학 시절에 나는 20대를 허송세월한 것 같아서 후회가 막심했다. 물론 학생운동이라는 명분이 있었지만, 20대에 마음을 다잡고 좀 더 체계적인 독서를 하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세월이 지나서 돌아보면, 분명히 그때 더 열심히 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게 뻔하다.

이택광

이택광 님이 쓴 초발심을 보니, 20대에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에 때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공부를 좀 더 많이 할 수 있는 시기가 있는 것은 분명할 테니. 어떻게 공부를 하든 나중에는 무언가 후회를 하게 될지라도, 열심히 해보고 나서 후회하는 게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인권에 대해 보다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다. 인권과 소위 ‘탈근대 철학’의 결합은 어떻게 가능할지1 , 인권과 관련된 사회학적 연구는 어떻게 할 수 있을지2 ,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인권교육을 할 수 있을지 등등 머릿속에 여러 가지 공부욕(欲)이 뒤섞여 있는데, 이런 것을 좀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

어떻게 해야 할까. 방향을 잡아줄 ‘스승’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기는 하지만.

  1. 적절한 표현일지는 모르겠는데, ‘주체의 자명성’ 뭐 그런 거 관련된 고민 때문에. 철학사만 조금 공부하더라도 해결되는 문제일까? []
  2. 개인적으로, 인권에 대해 사회과학적 접근이 지금보다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접근이 인권운동에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요즘 신세대 커플이 100일을 넘기기 어려운 것도 내적 충만감보다 인정욕망에 휘둘리는 이런 식의 문법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인정욕망에 길들여지면 당연히 외적 조건이 모든 걸 결정하게 된다. 남들이 보기 좋은 것,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 남들을 위한 것으로. 참, 희한한 이타주의(?)다. 근데, 그럼 그게 사랑인가? 쇼 혹은 비즈니스지.

계몽의 틀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잘 배울 줄 모른다. 그런 이들은 특별한 권위를 가진 사람한테서만 배울 수 있다고 간주하고, 또 자신도 그런 선생이 되고자 한다. 해서, 남보다 많이 알면 금방 교만에 빠지고, 그렇지 않으면 곧 열등감에 젖어든다. 그래서 남보다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감추려 든다. 수치스럽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높은 학벌을 취하게 되면, 그 지식은 반드시 특권으로 작용한다. 더 결정적으로 어떤 단계에 이르면 이들은 더이상 배움의 열정을 펼치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계몽의 구조는 배우는 사람도, 가르치는 사람도 다 불행하게 만들어버린다. 스스로 기쁨을 누리지 못하면서 남을 감동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남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자기 안의 기쁨 또한 더이상 자라기 어려운 까닭이다.

고미숙

여울바람님이 추천해주셔서 읽게 된 책. 좋은 책이다. 나의 ‘남들에게 추천해줄만한 책 목록’에 오를만한 책. (웃음) 다만, 추천해줘도 사람들이 (제목 때문에) 읽어보기도 전에 거부감을 갖는 게 좀 문제.

 
Designed by Pinkish Flower. Copyright © 2005-2010 el noveno some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