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noveno

체계적인 공부

유학 시절에 나는 20대를 허송세월한 것 같아서 후회가 막심했다. 물론 학생운동이라는 명분이 있었지만, 20대에 마음을 다잡고 좀 더 체계적인 독서를 하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세월이 지나서 돌아보면, 분명히 그때 더 열심히 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게 뻔하다.

이택광

이택광 님이 쓴 초발심을 보니, 20대에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에 때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공부를 좀 더 많이 할 수 있는 시기가 있는 것은 분명할 테니. 어떻게 공부를 하든 나중에는 무언가 후회를 하게 될지라도, 열심히 해보고 나서 후회하는 게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인권에 대해 보다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다. 인권과 소위 ‘탈근대 철학’의 결합은 어떻게 가능할지1 , 인권과 관련된 사회학적 연구는 어떻게 할 수 있을지2 ,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인권교육을 할 수 있을지 등등 머릿속에 여러 가지 공부욕(欲)이 뒤섞여 있는데, 이런 것을 좀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

어떻게 해야 할까. 방향을 잡아줄 ‘스승’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기는 하지만.

  1. 적절한 표현일지는 모르겠는데, ‘주체의 자명성’ 뭐 그런 거 관련된 고민 때문에. 철학사만 조금 공부하더라도 해결되는 문제일까? []
  2. 개인적으로, 인권에 대해 사회과학적 접근이 지금보다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접근이 인권운동에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요즘 신세대 커플이 100일을 넘기기 어려운 것도 내적 충만감보다 인정욕망에 휘둘리는 이런 식의 문법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인정욕망에 길들여지면 당연히 외적 조건이 모든 걸 결정하게 된다. 남들이 보기 좋은 것,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 남들을 위한 것으로. 참, 희한한 이타주의(?)다. 근데, 그럼 그게 사랑인가? 쇼 혹은 비즈니스지.

계몽의 틀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잘 배울 줄 모른다. 그런 이들은 특별한 권위를 가진 사람한테서만 배울 수 있다고 간주하고, 또 자신도 그런 선생이 되고자 한다. 해서, 남보다 많이 알면 금방 교만에 빠지고, 그렇지 않으면 곧 열등감에 젖어든다. 그래서 남보다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감추려 든다. 수치스럽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높은 학벌을 취하게 되면, 그 지식은 반드시 특권으로 작용한다. 더 결정적으로 어떤 단계에 이르면 이들은 더이상 배움의 열정을 펼치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계몽의 구조는 배우는 사람도, 가르치는 사람도 다 불행하게 만들어버린다. 스스로 기쁨을 누리지 못하면서 남을 감동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남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자기 안의 기쁨 또한 더이상 자라기 어려운 까닭이다.

고미숙

여울바람님이 추천해주셔서 읽게 된 책. 좋은 책이다. 나의 ‘남들에게 추천해줄만한 책 목록’에 오를만한 책. (웃음) 다만, 추천해줘도 사람들이 (제목 때문에) 읽어보기도 전에 거부감을 갖는 게 좀 문제.

고통스러운 공부?

공부는 재미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 가끔은.
하지만, 분명히 공부는 재미있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공부가, 학교라는 공간에서 하는 공부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물론, 그 공부도 재미있을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현진씨가 지적했듯) 그것이 ‘일차적인 사실들을 반복적으로 암기하는 데서 오는 일종의 단순노동에서 오는 즐거움’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공부는, 적어도 사회과학 쪽의 공부(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이 분야뿐이다. 다른 분야도 그럴 것이라고 유추하긴 하지만.)는, 의미를 갖지 못하게 쪼개지고 또 쪼개져 버렸다. 그것들은 분명히, ‘메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아져야 하는데 말이다. 학교에서 사용되는 교과서를 보면, 책을 통해서 봤을 때는 상호 연관되어 설명되었을만한 개념들이 쪼개지고 또 쪼개져서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한 채 가득 들어있다. 이러니,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공부가 재미없는 것은 당연하리라 생각한다. 아무 의미도 없는 것들을 단순 암기하는 것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의미 없는 공부’만을 공부라고 생각한다는 것에 있다. 결국, 그들에게 공부는 고통이 되어버리고, 공부라는 것은 좋은 대학에 가고자, 좋은 직장을 얻고자 하는 의미 없는 강제노동이 되어버린다. 그런 고통 속에서 헤매는 동안, 그들의 뇌는 죽어버리고, 그들은 ‘똑똑한 바보’가 되어버리고 만다. ‘똑똑한 바보’들은 더 이상 배우려 하지 않는다.

한국의 학교에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은 즐겨라’며 이러한 강제노동을 합리화시키는 말이 넘쳐난다. 이런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며 책상에 적어두기 이전에, 한 번 생각해보라. 과연 공부가 고통스러운 것인가를. 배운다는 것은 즐거운 것이며, 재미있는 것이다.

물론, 늘 재미있을 수는 없겠지. 아무리 좋아하는 음악이라도 듣기 싫은 때가 한 번쯤은 있을 것 아닌가. 그러나 넓게 볼 때, 공부는 재미있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은 공부가 있다면, 그런 건 당장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다. 세상에는 당신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려고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고(마찬가지로, 당신은 누군가에게 늘 무언가를 가르쳐주고 있다.), 당신의 뇌는 그 가르침들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데, 당신은 그것들을 모두 다 거부하고 스스로 ‘똑똑한 바보’가 되려고 하고 있다.

덧쓰기.
그런데 당장 그만두고 싶어도 그게 말처럼 쉽게 되지가 않을 것이다.
그렇다. 바로 그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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