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noveno

Gorillaz - El Mañana

October 4th, 2008

Gorillaz - El Mañana (2005)

얼마 전에 들었을 때, 받은 느낌 그대로의 뮤직 비디오.

사랑 이야기

October 4th, 2008

할아버지, 할머니. 친척들의 대화 속에 잠깐씩 섞여 나오는 두 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두 분은 어떤 사랑을 하셨을지 듣고 싶어진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할머니께 여쭤보고 싶지만, 할머니께서 그런 이야기를 꺼리신다시기에, 망설이고 있는 중. 하지만, 잠깐씩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만 들어도, 두 분의 이야기는 정말 특별할 것 같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보다 두 살 많았다. 두 분을 만나게 한 것은 한국 전쟁. 그 당시 두 분은 중학생이었다. (두 분은 서로에게 첫사랑이었을까.) 서울에 살던 할머니는 대구로 피난을 오게 되었고, 전쟁 동안 어느 집에 세들어 살고 있었다. 그 집은, 할아버지의 친척집. 할아버지는 그 당시 대구로 유학을 와서 친척집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두 분은 그렇게 만났다.

할머니가 서울로 돌아간 이후에도 두 분은 편지를 계속 주고 받았던 것 같다. 두 살 차이라지만, 할머니는 고등학교 1학년 이후 바로 대학에 진학하셨기에 실상 네 살 차이나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진로에 조언을 많이 해주었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집안은 가난했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조언에 따라 학비가 들지 않는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하셨다.

할아버지가 사관학교를 졸업한지 1년쯤 뒤, 두 분은 결혼하셨다. 할머니의 집안에서 반대가 많았다.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지만, 대충 짐작이 간다. 할머니가 할아버지보다 두 살 많기도 했고. 할머니의 집안은 비교적 부유했던데 반해, 할아버지는 (장교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긴 하지만)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건어물상의 아들이었으니까.

두 분은 결혼 후 다섯 달 뒤, 아버지를 낳으셨다. 할머니께서 이 이야기를 하기 꺼리시는 까닭도 아마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거부 반응을 보이는 일이니, 40여년 전이었으면 오죽했을까. 두 분은 그 후 37년을 함께 하셨다. 할아버지의 제사 때마다, 방에 들어가 눈물을 흘리시는 할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두 분은, 어떤 사랑을 하셨을까.

폰 몰트케, 모파상, 전쟁

September 27th, 2008

전쟁은 성스럽다. 전쟁은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법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모든 위대하며 고귀한 감정들을 유지하게 준다. 명예, 헌신, 미덕, 그리고 용기. 그리고 간단히 말해서 그들이 가장 추한 물질주의에 빠져드는 것으로부터 구해준다.

Helmuth Karl Bernhard von Moltke

그렇다면, 수백만의 사람들과 함께 떼를 지어서, 쉬지도 않고 밤과 낮으로 행군하며,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아무것도 공부하지 않고,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아무것도 읽지 않고, 아무에게도 소용이 없으며, 오물 속을 뒹굴며, 진흙탕에서 잠자고, 끊임없이 마비 상태로 짐승같이 살며, 도시들을 약탈하고, 마을들을 불태우며, 전체 백성들을 멸망하게 하며, 그리고서 다른 무리 인간의 살덩어리들을 만나며, 그들 위에 넘어지고, 피의 웅덩이와 진흙에 섞인 살점들 그리고 시체 더미들로 붉게 물든 평원들을 만들며, 당신들의 팔이나 다리들이 날아가고, 당신의 머리들이 아무에게도 이익이 되지 못하면서 날아가 버리고, 들판의 한구석에서 죽어가고 있을 때, 당신의 노부모들, 당신의 아내 그리고 자녀들이 배고픔으로 죽어가는 것을 생각해보라. 그것이 바로 가장 추한 물질주의로 빠져들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Guy de Maupassant

타인에 대한 이해

September 11th, 2008

7교시 마친 뒤 청소시간. 그의 어깨로 내 어깨를 툭 치는 친구에게 얼굴을 찌푸렸다. 꾸바에선 이렇게 인사를 한다며 농담을 하는데, 한 번 찌푸려진 얼굴은 펴지지가 않는다. 그 친구가 우리 옆을 지나가던 다른 친구에게 똑같은 인사(?)를 하고, 지나가던 그 친구가 답례(?)를 하는 것을 보고서야 얼굴이 풀렸다. 친구가 무안스러워 할까봐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피곤하다. 이제 2년이 다 되어가는 그 일을, 왜 잊을 수 없는 걸까.

오늘 8교시는 자습시간. 오늘 왜 이리 피곤하지. 8교시가 시작하기 전에 눈 좀 붙여야겠다고 생각하며 책상 위에 엎드렸다. 눈을 떠보니 8교시가 시작한지 5분이 지났다. 주섬주섬 문제지를 꺼내 풀고 있는데 부반장이 교실에 들어왔다. ‘학교 폭력’에 관한 표어를 공모한다며 8교시가 끝나기 전까지 써서 내야 한단다. 이런 식으로 구는게 바로 ‘학교(의) 폭력’이라고 속으로 비아냥거리며, ‘표어 따위를 만든다고 학교 폭력이 없어지냐’고 생각한다.

2년 전 일이 다시 생각난다. 아니, 1년 8개월. 중학교 3학년, 2007년 1월 1일. 나는 코뼈가 부러진 채 병원 입원실에서 새해를 맞았다. 장난. 그는 장난이었다고 했다. 그래, 시작은 아까 청소시간에 있었던 일과 같았다. 달랐던 것은, 그는 내가 얼굴을 찌푸리는 정도가 아니라, 하지 말라고 수없이 이야기해도 듣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어깨를 치던 ‘장난’이, 나를 밀쳐 벽에 부딪치게 하는 ‘장난’으로, 나를 땅바닥에 넘어뜨리는 ‘장난’으로 변해갔다는 것.

방학식인 12월 30일, 그는 집에 가고 있는 나에게 방학 동안 하지 못할 ‘장난’을 몰아서 하는 듯이 행동했고,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그를 밀쳤다. ‘밀쳤다’지만 넘어지기는 커녕 전혀 꿈쩍도 하지 않았던 그는, 화가 났는지 내 코를 부러뜨려 놓았다. 지나가던 사람이 없었더라면, 몇 군데 더 부러졌을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의 일은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입원실에 찾아와 울며 사과하던, 그리고 나서, 겨울 방학이 끝나고 졸업하기 전까지 그 며칠간, 나에게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노려보기만 하던 그. 그 눈빛이 미안하다는 사과의 뜻이었을지도 모르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게 받아들이기가 쉽지가 않다.

잊어버리고 싶다. 전치 4주 진단을 받았던 코는, 비록 4주하고도 2주 정도 더 걸리긴 했지만, 어쨌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 나았는데, 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잊어버리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아까 청소시간에 그랬듯, 나는 지금도 ‘장난’에 몹시 예민하게 반응한다.

표어로 무엇을 쓸까 고민하다가 다른 친구의 것을 슬쩍 봤다. ‘주먹 꺼내기 전에 통장 잔고부터 생각하자.’ 웃음이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심장이 따끔거린다. 타인, 타인의 상처에 대한 ‘완전한’ 이해 따위는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이라도 이해해줬으면, 이해하는 척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조서를 꾸미러 입원실에 찾아온 ‘여성/청소년계’ 경찰은, 약속시간보다 왜 이리 늦었냐는 어머니의 말에 ‘강간당한 X’의 조서를 꾸미느라고 늦었다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학교 폭력이니, 성폭력이니 없애겠다며 ‘표어’ 따위를 만들기 이전에, 타인의 상처를, 이해하는 척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괴물

August 22nd, 2008

이라크전이 터졌을 때 13세의 소녀 샬롯 알데브론은 눈을 뜨고 자신의 얼굴을 보라는 말로 반전 메시지를 전했다. “저를 한번 보세요. 찬찬히 오랫동안. 여러분이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걸 생각했을 때, 여러분 머릿속에는 바로 제 모습이 떠올라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죽이려는 바로 그 아이입니다. 이건 액션영화도, 공상영화도, 비디오게임도 아닙니다.”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 우리를 놀라게 한 악마성이란 바로 그런 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전쟁광들은 겁쟁이들이 전쟁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을 똑바로 볼 수 없는 겁쟁이들만이 전쟁으로 이권을 챙기는 사기꾼들에게 놀아난다. 테러에 대한 공포, 악에 대한 공포로 주눅 들었을 때 사람들은 전쟁에 빠져드는 것이다. 하지만 기억하자. 공포로 한없이 웅크들 때 내 안에서 악마가 자라난다는 것을. 그리고 세상의 모든 파시스트들은 겁쟁이들이며, 겁쟁이들 속에서 자라난다는 것을.

고병권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전쟁을 똑바로 보라.

“세상의 군대가 모두 없어졌을 때, 온갖 무기로 무장한 테러리스트 집단이 나타나면 어떻게 할거냐”던 친구가 생각난다. “차라리 외계인들이 침략해오면 어쩌냐고 하지 그래”란 말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온갖 상상의 적들. 상상 속에서 적들은 피도 눈물도 없으며, 오직 살육만을 위해 사는 존재들로 그려진다. 한 마디로 ‘괴물’이다.

니체가 ‘선악을 넘어서’에서 한 말이 떠오른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테러리즘이라는 ‘괴물’과 싸우고 있다는 자들이 저지르고 있는 행동을 보라. 그들은 ‘괴물’ 상상에 빠져 ‘공포로 주눅’들었고, 결국 상상 속의 ‘괴물’과 싸우다 그 자신이 ‘괴물’이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괴물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임을 기억하라. 우리가 생각하기를 멈추고, ‘전쟁으로 이권을 챙기는 사기꾼들’이 퍼뜨리는 ‘괴물’ 상상에 놀아날 때, 우리를 ‘괴물’로 만드는, 전쟁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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