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 noveno

전체가 있어야 하나도 있다

May 11th, 2008

2006년 5월에 있었던 일이다. 아직 5월이건만 그 날은 무척 더웠다. 지하실은 좀 시원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기대를 했건만 웬걸, 지하실은 더 더웠고 게다가 무척 습하기까지 했다. 찜통. 그래, 딱 찜통에 들어와 있는 기분. 숨이 턱턱 막혔다.

그런데 그 지하실에 놓여 있는 화이트 보드, 그 화이트 보드에 적힌 문구를 본 순간, 나는 더 숨이 막혔다.

“전체가 있어야 하나도 있다.”

‘하나’였는지 ‘개인’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두 단어가 크게 차이가 없다는건 다들 아실게다. 나는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전체가 있어야 하나도 있다’라니….

2006년 5월, 나는 한 수련원에 있었다. 학교에서 갔던 수련회로.

그 축축하고 더운, 찜통같은 지하실에서, 우리는 그 수련원이 준비한, 서로 마음을 모아 ‘단결’하기 위한 활동들 중 하나를 했다. 우리는 작은 파이프 조각을 하나씩 받았고, 일렬 횡대로 늘어서서, 그것을 머리 위로 들어올려서 다른 사람들의 것과 연결시킨 다음, 공을 그 파이프 위에서 굴려 한 쪽 끝에서 반대 쪽 끝까지 가게 해야 했다. 공이 자신이 들고 있던 파이프를 지나갔으면, 끝 쪽으로 달려가 다시 파이프를 잇고. 어느 팀이 가장 먼저 공을 한 쪽 끝에서 반대 쪽 끝까지 굴리느냐. ‘파이프라인’이라는 이름의 활동.

공이 굴러가다 도중에 떨어졌다. 다시. 또 떨어졌다. 다들 점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찜통같은 그 지하실에서. 어느샌가 그 짜증은 분노로 바뀌었고, 공을 떨어뜨린 사람에게 욕설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어느샌가, 공을 떨어뜨린 사람을 원망하며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공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기에, 내가 저 사람의 처지가 되어 욕설을 듣지는 않을까 약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 활동을 시킨 자에게는 분노하지 못하고, 그 활동이 빨리 끝나지 못하게 하는 자들에게만 화를 내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단결? 내가 그 찜통 속에서 배운 것은, 사람들을 편을 갈라 의미없는 경쟁을 시키고, 그 경쟁 속에서 팀이 이기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미워하는 것, 그것 밖에는 없었다. 아니, 내가 배운 것은 단결이 맞았다. 전체의 뜻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하나.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해내는 몇몇 ‘하나’들에 대한 전체의 분노, 그것은 ‘단결’에서 필연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순수한 게르만의 단결을 위해, 그 순수한 게르만이 되지 못하는 자들, 집시・유대인・동성애자・장애인 등의 사람들을 학살한 나치 독일. 나는, ‘파이프라인’을 제대로 못한 자들에 대한 비난과 분노가, 나치 독일의 학살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차이가 있다면, 총이 있고 없고 정도의 차이가 아닐까. 순수한 게르만인들의 독일을 만든다는 목표와, 공을 한 쪽 끝에서 반대 쪽 끝까지 굴리는 목표는 똑같이 너무나도 의미없는 짓이고, 그 목표를 이루는데 방해가 되는 자들은 똑같이 배제되었다. (한 쪽은 학살, 다른 한 쪽은 비난과 욕설.)

‘파이프라인’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활동에서도, 그 수련원은 ‘전체가 있어야 하나도 있다’라는 말을 우리에게 가르치려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듯 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는 너무나 괴로웠다. 그 가르침을 점차 받아들이고 있는 나를 보는 것은 더 괴로웠고.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전체주의’를 그토록 혐오하게 된 것은. 그 수련회를 다녀오기 전에도, ‘전체가 있어야 하나도 있다’ 따위의 문구에 거부감을 일으킬 정도로는 ‘전체주의’의 끔찍함을 느끼고 있었긴 하지만.

나는, ‘전체’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

나쁜 아이

April 19th, 2008

2006년의 일이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 새로운 교감이 부임해왔고, 그는 학생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하고 있는 듯 했다. 그 때 있었던 일이다.

우리 반에는 ‘문제아’라고 낙인찍힌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 친구는 나쁜 친구가 아니었다. 단지 술과 담배 그리고 오토바이를 좋아하고, 가만히 앉아서 수업을 듣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그런 친구일 뿐이었다. ‘어른들’에게는, ‘나쁜 친구’가 되기에 충분했겠지만.

그런데, 그 새로 온 교감은 나를 그 친구로 착각한 듯 했다. 그 친구와 내가 함께 있을 때, 한 선생이 그를 가리키며 교감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한 이후로, 교감이 나에게 계속 말을 걸어왔다. “너, 무슨 애로사항 있니? 괜찮아, 다 이야기해 봐.”

나는 그 시선이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다. ‘선생님이 착각하신 것 같은데요. 저는 그 친구가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내가 그 친구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단순히 ‘착각을 바로잡는’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내가 ‘나쁜 아이’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었고, 그가 ‘나쁜 아이’라는 것을 나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분명 ‘나쁜 아이’가 아니었다. 그가 누군가를 해코지한다는 말을, 나는 전혀 들은 적이 없다. ‘어른들’은 그가 술과 담배 그리고 오토바이를 좋아하고, 가만히 앉아서 수업을 듣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나쁜 아이’로 취급했다.

그리고 그 교감은 그 ‘나쁜 아이’에게 ‘다가가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했다. 다만, 그 친구가 아니라 나에게 ‘다가왔’지만. 정말이지 부담스러운 한 달이었다. ‘나쁜 아이’로 낙인찍힌 그 친구가 여태껏 느껴왔을 기분을 약간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여태껏 늘 ‘착한 아이’로 살아왔던 나는, 분명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선이 제 딴에는 매우 ‘친절한’ 것이었겠지만, 그 시선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또다른 칼날을 목에 들이대는 느낌’이라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점점 지날 수록, 그의 시선에서 뭔가 의아하다는 생각이 느껴졌고, 결국 한 달 뒤에는 사실(?)을 알게 된 듯 했다. 그 친구에게, 나에게 주던 그 부담스러운 시선을 던지며 ‘애로사항 없냐고’ 묻기 시작했으니까. 그 친구는 교감의 말을 채 듣지도 않고 그를 피하곤 했다.

만약 내가 교사가 된다면, 과연 나는 그 교감처럼 되지 않을 수 있을까.
관심이랍시고, 또다른 칼날을 들이대는. 자신이 없다.
왠지 그 친구가 만나고 싶어지는 밤이다.

야자를 ‘째다’

April 12th, 2008

고등학교에 입학한지 1년하고도 한 달 조금 넘게 지난 오늘, 처음으로 야자를 ‘쨌다’. 그 말은, (청소년인권에 관련된)간담회니 기자회견이니 하는 따위의 것에 가기 위해서라든가, 도저히 교실에 앉아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아프다건가 하는 이유가 아닌, 순전히 ‘야자를 하기 싫어서’ 야자를 빠지고 학교를 나왔다는 것이다. 오늘, 처음으로.

저녁식사 시간, 복도에서 하염없이 바깥만 쳐다보다가 교실로 들어왔다. 종이 치고, 수학 문제를 가방에서 꺼냈다. 하지만 풀고 싶지 않았다. 학교에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산책을 하고 싶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반장에게 아프다고 이야기하니, 별 말 없이 칠판에 적힌 ‘현원’ 수를 하나 줄여주었다. 중간고사가 5일 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나처럼 ‘야자를 빠지고 싶어’ 빠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늘 아침,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제 밤부터, 며칠 전에 들은 말이 머리 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저녁식사를 한 후,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창 밖을 보았다. 언덕이 보였다. 언덕을 넘어서 멀리멀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가지 생각이 얽혀 머리 속이 복잡했다. 결국, 나는 야자를 빠지고 학교에서 나왔다.

학교에서 나와 버스를 기다리는데, 문득 ‘다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 우습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나는 늘, 이 사회가 바라는 모습으로 살아왔고, 사회의 변화를 위한 뭔가를 한 적도 없었다. 청소년인권 운동을 한다고 하지만, 내 머리카락은 늘 짧았고 교사의 체벌에 아무 말도 못했고 묵묵히 소지품 검사를 받았다.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날, 모두가 즐거운 분위기에 야자를 ‘째서’ 학교에 남아 있는 사람이 한 반도 채우지 못할만한 수였을 때도, 나는 그 ‘학교에 남아 있는 사람’에 속해 있었다. 어쩌면 나는 이 사회의 변화를 원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2학년의 새 담임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학교 공부를 잘했음에도 ‘집안 사정으로’ 교사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그는, 늘 무언가 열등감을 갖고 사는 듯 했고, 그 열등감을 학생들에게 풀려는 듯 보였다. 나는 한 달도 채 못되어 그에게 ‘지쳐’ 버렸다. 그는 ‘늘 공부할 것’을 매번 강조했는데, 그에게 그 공부란 것은 ‘목적’이 아닌 ‘수단’,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나는 그에게 짜증이 났다. 내가 좋아하는 말들, 이를테면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 나는 한자를 몰라 한글로 해석한 것만을 외우고 있다(웃음)) 따위의 말들을 인용하며 늘 결론은 나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맺었기 때문이었다. ‘공부해서 출세해야 한다’는.

그 교사가 오늘 아침, 또 다시 잔소리를 했다. 잔소리 도중, 지난 학기 성적이 우수해 장학금을 받은 학생에게, ‘이번 성적이 이 모양이니 이번 장학금은 글렀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 학생은, 늘 말이 없고 어딘가 소심해 보이는 그는, 곧장 이렇게 말했다. “그런 거 별로 필요 없는데요.” 나는 절대로 그런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단지 겁이 나서만이 아니라, 마음 속으로도 못할 것이다. 나는, 그냥 이 사회가 요구하는대로 살아가려 애쓰니까. 내가 그 교사와 다를 게 무엇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이렇게 괴롭다는 것은, 분명 이 나라의 학교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할 테지. 나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6교시까지만 수업을 받고, 집에 갈 수 있었으면. ‘순응자’의 너무도 소박한, 그런 바람을 ‘미친 것’으로 취급하는 학교. 저녁식사 때, 나는 창 밖을 바라보며 이 학교가 부서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서져 버렸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은 나를 늘 두렵게 한다. 이러한 생각은 한 때일 뿐이며, ‘어른’이 되면 바뀌게 될 것이고, 그 때가 되면 이런 생각이나 하며 시간을 낭비했던 학창시절을 후회하게 될 거라는 협박. 내가 두려운 것은 그 협박 그 자체가 아니다. 그 협박이 정말이 아닐까 생각하는 내 마음 속 어딘가, 나는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그런 따위의 두려움 속에, 나는 방황하기 시작했다. CSS의 ‘:before’와 ‘:after’가 무슨 기능을 했는지 잊어버리게 되면서 동시에, 나는 내가 이 학교에 들어오기 전 나의 모습과, 내가 이 학교를 나와 되고자 했던 나의 모습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내가 수년간 갖고 있던 꿈이, 단 몇 개월만에 무너져 버렸다. 아니, 내가 무너뜨려 버렸다. 모든 것은 나의 탓이었다. 나는 ‘내가 원해서’ 이 학교에 들어갔고, 나 스스로 나를 방황 상태에 놓았다. 그리고 내가 그 상태를 바꿔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두려워서 바꾸질 못하고 있었다. 나는 두려움 속에서 잊어버리게 되었다. 내가 이 학교에 왜 들어왔는가를. 그리고, 이 사회의 변화를 바란다 말하면서도 정작 행동은 그렇지 않은 삶을 살게 되었다. ‘순응자’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런데, 며칠 전 들은 그 한마디가, 내가 이 학교에 들어간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나는 떠나고 싶었었다. ‘공동체주의’라는 미명 하에 나를 ‘전체’ 속에 가둬놓으려 했던 것들. ‘전체가 있어야 하나도 있다’는, 나치 독일을 연상시키는 그 말에서, 나는 벗어나고 싶었었다. ‘자유주의’라는 미명 하에 나의 행복을 억압하려 했던 것들. ‘우리도 너희들의 바람과 같은 바람이지만, 아직 그 바람을 온전히 실현시키기에는 갈 길이 멀다’고 속삭이며 힘있는 자들의 자유만 신경썼던 그들에서, 나는 벗어나고 싶었었다. 그딴 건 공동체주의가 아니야. 그딴 건 자유주의가 아니야. 내가 벗어나고 싶은 것들이 전혀 없는 세상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적어도 그런 것들이 노골적이지는 않은 곳으로 가고 싶었었다. (나는 이 곳을 그런 세상으로 만들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는 그런 곳에 가기 위해 계획을 짰지만, 그 계획은 좌절되었고, 그 계획을 수정했다. 나는 바보였다.

나는 바보같은 계획에 따라, 내가 벗어나고 싶어 했던 것들이 가득한 곳에 들어갔다. 한 달도 안 되어서 나는 후회했다. 원래의 계획대로 살 수는 없을까, 고민했지만, 두려워졌다. (원래의 계획이라고 해서 그리 좋을 건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다. 적어도 6교시까지만 수업을 받고 집에 갈 수 있으니까.) 두려움이 시작되었다. 나는 포기했고, 점점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바꾸고, 타협했다. 어른들이 좋아할만하면서, 나도 썩 나쁘지 않게 생각하는 것을 나의 ‘꿈’이랍시고 가지게 되었다. 겉으로는 늘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꿈이지만, 과연 그럴까 하는 의심이 마음 한 구석에 늘 남아 있다.

도착했다. 내가 좋아하는 산책 코스. 처음 발견했을 때, 나는 정말 기뻤다. 이런 느낌의 길이 존재했다니. 두 번째 찾아갔을 때, 나는 실망했다. 그 느낌이 아니었다. 세 번째, 실망했다. 네 번째, 오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갔다. 기뻤다. 그 때의 그 느낌,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첫번째와 두번째, 세번째, 그리고 네번째 방문에서 그 길이 달라진 것은 별반 없을 것이다. 내 마음이 달랐을 뿐. 처음 그 길을 발견했을 때, 그 때는 시험기간의 주말이었고, 나는 스트레스를 무척 받고 있었다. 두 번째, 세 번째는, 아무런 걱정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결국, 나는 그 길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그 길에서 산책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는 것이 좋았던 것이었다. 나는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제멋대로 춤췄다. 학교에서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기분을, 매일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느껴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때까지.

쿵쾅거림은 계속되었다. 나는 그 이유를 성급히 판단하지는 않기로 했다. 하지만, 그에게 고맙다는 말은 하고 싶다. 나는 떠나기 위해 이 학교에 왔다. 그리고, 내가 두려움만 이겨낸다면, 나는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두려움. 아직은 힘들지만, 조금씩, 이겨내야지. 그리고, 이제부터, 나는 바꾸기 위해 이 학교에 왔다, 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두려움만 이겨낸다면, 나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천일 것이다. 나는, 실천하고 싶다.

세 잔의 카라멜 마키아또

February 27th, 2008

세 잔의 카라멜 마키아또.

왠지 모르게, 그에게 화가 났다. 그가 나에게 화를 낼 수는 있어도, 내가 그에게 화를 낼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래도 딱 오늘 하루만, 슬프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그에게 화가 난 척 했다. 아무도 봐 줄 사람이 없었지만,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나는 버스에 앉아 있었다. 왜 나는 안 되는 걸까. 그가 ‘인생의 반할을 결정짓는다고 믿어지는 시기’, 그 시기만 이야기한채 대화를 끊었다면, 나는 이렇게 화난 척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말했던, 그 사람이 부러웠다. 그 사람은 되는데, 나는 안 되는 이유가 뭘까.

버스에서 내렸다. 패스트푸드점. 만나기로 한 장소에, 다른 사람들은 아직 오지 않았다.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카라멜 마키아또. 3천원. 지갑 속에는 2천원 밖에 들어 있지 않았다. 천원이 넘는 수수료를 물고, ATM기에서 만원을 뽑았다. 마시고 싶었다.

커피 위의 거품을 바라보다, 한 모금.
문제는 키가 아니었을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은 되는데, 나는 안 되는 이유. 바로 그것, 키. 그래, 늘 그랬다. 지난 삼 년, 세 명의 그들.
키가 작고 귀여웠던, 첫번째 그는, 나보다 키가 20cm 큰 남자를 선택했다. 나는 그에게서 나를 거절한다는 말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늘 ‘남자는 우선 키가 크고 봐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다니던 두번째 그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상형이 뭐냐는 나의 질문에 제일 먼저 ‘키 큰 사람’을 꼽던 그는, 지금 내가 화가 나 있는 그는, 나보다 10cm 큰 그 남자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그 사람은 되지만, 나는 안 된다.

이 생각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을, 나도 잘 안다.

만나기로 한 사람들이 왔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나는 저 멀리 앉아 있는, 내 또래의 여자들을 자꾸만 쳐다 보았다. 그 여자들의 얼굴 위로, 그의 얼굴이 자꾸 겹쳐졌다가 사라졌다. 그 모습을 계속 보기 위해, 나는 그 여자들을 자꾸만 쳐다 보았다. 만약 내 키가 컸다면, 그는 나를 거절했을까.

모임이 끝난 후,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한 잔만 더 마실까. 집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카라멜 마키아또. 4천 8백원. 한 끼 식사보다 더 비쌌지만, 그래도 오늘은 왠지 마시고 싶었다. 거품. 홀짝홀짝 커피를 마시며, 1800원이라는 돈이 꽤나 차이가 크구나 생각을 했다. 10cm라는 키도 꽤나 차이가 크겠지. 커피를 마시면 키가 크는데 방해가 된다지만, 오늘 하루 뭐 어때.

언제부터인가, 내가 성적표로 이루어진 덩어리인 것 같다는 생각이 가끔씩 들곤 했다. 내가 좋은 성적을 받지 않으면, 내가 수학 1등급을 받지 않으면, 내가 이번 학기에도 장학금을 받지 못한다면,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성적표로 이루어진 덩어리이기에, 그 성적표가 없다면,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 내가 계속 해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한다면, 모두가 나를 외면할 거라는 생각.

더 이상 커피를 마시고 싶지 않았는데도, 한 잔 더 마시기로 했다. 카라멜 마키아또. 천 2백원. 편의점에서 커피를 집어들었다. 세 명의 그들, 세 잔의 카라멜 마키아또. 속이 메스꺼운데도, 나는 억지로 마셨다. 그렇다, 나는 쇼를 하고 있었다. 내가 쇼를 하지 않으면, 그들에게 뭔가를 보여주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키가 큰 나를 보여주지 않으면, 좋은 성적표를 받는 나를 보여주지 않으면, 그러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제 정신이 아닌 생각임을 알면서도, 나는 계속 그런 생각에 빠져 들었다. 내가 키가 좀 더 컸다면, 그들은 나를 사랑해줬을까. 사랑. 부모님은 나에게, 내가 아름다운 아내를 얻으려면, 아니 정확히 이야기해서 (주류 사회의 시각으로 보기에) 아름다운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으려면, 경제적 여유,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돈, 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속물 같지만, 세상은 원래 그런 거라고.

속물. 사실 내가 제 정신이 아닌 척 생각을 하는 건, 내가 싫기 때문이다. 나는 속물이었다. 누군가 내게 이야기했듯, 나는 철저히 주류 사회, 속물인 사회가 좋아할만한 사람들만 사랑했다. 그들의 성격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외모를 가장 먼저 보았고, 성격은 그 외모에 맞춰 합리화시켰다. 나의 키, 나의 외모. 내가 그들을 그렇게 본 것처럼, 그들이 나를 이렇게 보는게 당연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시선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싫었다. 그들이 나를 이렇게 보는게 싫은데, 나는 그들을 그렇게 보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러한 생각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약간의 과대망상과 우울증. 언젠가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상담가는, 나의 장점 20가지를 적어보라고 했다. 나는 아무렇게나 적었다. 나에게는, 나의 장점이 20가지 이상이라는 것을 아는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나에게 장점이 하나도 없어도, 나를 안아줄만한 누군가가 나에겐 필요했다. 그리고, 그렇게 남을 안아줄 수 있는 마음이, 나에겐 필요했다. 내가 키가 작아도, 내가 좋은 성적표를 받지 못한다더라도, 나를 사랑해줄 사람. 그의 외모가 어떻던 간에,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나.

나는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집에 오자마자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를 걱정해주실 분들, 만약 있다면, 그러시지 않으셔도 괜찮다. 나는 카페인에 취해 잠시 과대망상과 우울증에 걸려 있을 뿐이다. 오늘 밤 잠이 든 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돌아와 있을 것이다. 치료받아야 할 병든 제품에서, ‘정상적인’ 제품으로. 그런데, 이렇게 커피를 많이 마셨으니, 오늘 밤 잠이 들 수 있을까?

나는 달라지고 싶다. 나는 더 이상, 이런 식의 사랑을 하고 싶지 않다. 아니, 이런 건 사랑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사랑을 한 적이 없다. 카라멜 마키아또를 사서 마시듯, 나를 팔아 그들을 사고자 한 것일 뿐. 부모님의 말씀이 다시 떠오른다. 속물 같겠지만, 세상은 원래 이런 거라고. 지금의 나는 내 외모를 팔아 그들의 사랑을 사야 하고, 미래의 나는 ‘경제적 여유’를 팔아 그들의 사랑을 사야 한다. 그 경제적 여유를 얻기 위해, 나의 성적표는 계속 좋아야 한다. 괴롭다. 속물인 나는 괴로운데, 그렇다면 세상의 다른 사람들도 괴로울까? 모르겠다.

세 명의 그들, 세 번의 좌절, 세 잔의 카라멜 마키아또.
그리고, 세 번의 사랑을 했다고 믿는 속물 ‘한 개’.

고통스러운 공부?

February 21st, 2008

공부는 재미없을 수도 있다. 그렇다. 가끔은.
하지만, 분명히 공부는 재미있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공부가, 학교라는 공간에서 하는 공부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물론, 그 공부도 재미있을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현진씨가 지적했듯) 그것이 ‘일차적인 사실들을 반복적으로 암기하는 데서 오는 일종의 단순노동에서 오는 즐거움’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공부는, 적어도 사회과학 쪽의 공부(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이 분야뿐이다. 다른 분야도 그럴 것이라고 유추하긴 하지만.)는, 의미를 갖지 못하게 쪼개지고 또 쪼개져 버렸다. 그것들은 분명히, ‘메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아져야 하는데 말이다. 학교에서 사용되는 교과서를 보면, 책을 통해서 봤을 때는 상호 연관되어 설명되었을만한 개념들이 쪼개지고 또 쪼개져서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한 채 가득 들어있다. 이러니,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공부가 재미없는 것은 당연하리라 생각한다. 아무 의미도 없는 것들을 단순 암기하는 것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의미 없는 공부’만을 공부라고 생각한다는 것에 있다. 결국, 그들에게 공부는 고통이 되어버리고, 공부라는 것은 좋은 대학에 가고자, 좋은 직장을 얻고자 하는 의미 없는 강제노동이 되어버린다. 그런 고통 속에서 헤매는 동안, 그들의 뇌는 죽어버리고, 그들은 ‘똑똑한 바보’가 되어버리고 만다. ‘똑똑한 바보’들은 더 이상 배우려 하지 않는다.

한국의 학교에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은 즐겨라’며 이러한 강제노동을 합리화시키는 말이 넘쳐난다. 이런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며 책상에 적어두기 이전에, 한 번 생각해보라. 과연 공부가 고통스러운 것인가를. 배운다는 것은 즐거운 것이며, 재미있는 것이다.

물론, 늘 재미있을 수는 없겠지. 아무리 좋아하는 음악이라도 듣기 싫은 때가 한 번쯤은 있을 것 아닌가. 그러나 넓게 볼 때, 공부는 재미있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은 공부가 있다면, 그런 건 당장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다. 세상에는 당신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려고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고(마찬가지로, 당신은 누군가에게 늘 무언가를 가르쳐주고 있다.), 당신의 뇌는 그 가르침들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데, 당신은 그것들을 모두 다 거부하고 스스로 ‘똑똑한 바보’가 되려고 하고 있다.

덧쓰기.
그런데 당장 그만두고 싶어도 그게 말처럼 쉽게 되지가 않을 것이다.
그렇다. 바로 그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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